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맹꽁이 서당 (문단 편집) == 사관과 인물 평가 == 아래글을 읽기 전에 이 만화는 80년대에 연재된 만화라는 걸 숙지해야 한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번역된 실록을 바로 볼 수 있지만 80년대에는 역사를 알려면 직접 이리저리 뛰면서 자료를 찾아야 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 출간될 [[1980년대]] 당시의 주류 사관에 충실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서인 중심 사관(정확히는 노론 시파 사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론 음모론]]이 좋아합니다.-- 만화 레퍼토리 자체는 옛날 전래동화 마냥 [[이분법]]적이고 성향이 다소 평면적이고 주관적이다. 군주는 성군이나 암군뿐이고 신하는 청렴하고 의로운 충신과 남을 모함하고 영화를 누리는 간신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또 누구는 지나치게 띄워주고 누구는 지나치게 깎아내린다. 간신배가 나라를 망치거나 선인을 궁지에 몰게 하지만 결국 착하게 산 사람들은 복을 받고 간신배들은 업보가 돌아온다는 [[권선징악]]적 메시지도 수십 번 넘게 [[클리셰]]로서 반복된다. [[연산군]]이 세자 때 자기를 핥은 사슴을 발로 찬 것 때문에 아버지 성종에게 꾸중을 듣자 앙심을 품고 나중에 왕이 되자마자 그 사슴을 죽였다는 등의 [[사이코]] 짓을 했다거나, 공부를 싫어하는 노는 것만 좋아하는 불량아였다는 얘기가 있으나, [[연산군]] 문서에서 실제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근거가 불확실하며, 세자 때의 연산군은 딱히 불량아도,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닌 평범한 세자였다. [[광해군]]은 업적에 대한 묘사는 일절 없고 악인을 묘사할 때 쓰이는 돼지코를 달고 나오며,[* 하지만 왕이 된 직후의 장면에서는 '본래 총명했던'이라는 설명이 붙어있고, 중립 외교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에 나온 Hello 만화로 보는 한국사에서는 조선을 다시 일으키려고 노력한 왕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반대파들을 죽인 것과 궁궐 공사로 재정파탄이 일어난 건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 선조와의 갈등으로 타락해 형제와 가족들과 신하들을 학살한 폭군으로 묘사되어 연산군과 함께 영구까임권을 얻어 자주 등장한다. [[이이첨]]을 비롯한 측근 신하들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실제로도 광해군은 대중적 인식과는 달리 폭군이 맞았기 때문에 이런 서술은 문제될게 없지만, [[선조(조선)|선조]]와 [[인조]]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서술하지 않거나 그나마 서술된 것도 두리뭉실하게 말하며 비판 없이 넘어가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그 막장 [[임해군]]조차도 악행은 전혀 서술하지 않고, 그저 왕가에 태어난 죄로 광해군에게 억울하게 희생당한 것처럼 그려진 한 컷이 전부다. 도원수 시절의 [[김명원]]을 크게 비판하였다. 철수하는 과정을 신각보다 먼저 꼴사납게 도망치면서 후퇴 작전이라고 변명하는 모습으로 그려내거나, 신각에 대해 엄하게 벌할 것을 조정에 장계 올릴 때 '''"이래야 도망친 내 체면이 좀 서지!"'''라고 말하는 식으로 그려졌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아이들에게 김명원은 대판 까인다. [[소현세자]]에 대한 묘사도 좋지 않아 포로 시기의 내용도 생략하고, 청 황제가 잔치를 베풀고 소원을 들어줄 때 봉림대군이 백성들을 풀어달라고 하였지만 자기는 벼루 하나 받아와서 처음에는 반갑게 맞았던 인조가 열 받아서 그 벼루를 던져 죽이고, 인조가 자기 실수를 탄식했다는 얘기도 실려있다. 이것도 거짓이다. 벼루 얘기는 야사일 뿐더러, 실제로 소현세자는 누구보다 백성들을 구해내는데 힘쓴 인물이다. 게다가 인조는 소현세자를 절대 반갑게 맞지 않았고 엄청난 불화를 겪으며 소현세자를 엄청나게 꺼리고 미워했다. 사실 해당 에피소드는 임경업전에서 나온 일화로 추정되는데, 임경업전을 보면 청의 황제가 두 대군을 조선으로 돌려보낼 때 봉림대군은 납치된 조선 사람들을, 소현세자는 금은을 원한다고 말해 봉림대군을 더 아끼며 인조도 돌아온 소현세자를 욕한다. 하지만 실제로 청의 비위를 맞춰가며 대규모 인삼 농장을 통해 조선 사람들을 구해준 것은 '''소현세자 부부'''였다. 그나마 윤승운 작가가 맹꽁이 서당 이후에 그린 '겨레의 인걸 100인'에서는 좋게 묘사했다. 또한 5권의 [[숙종(조선)|숙종]] 편에서 [[장희빈]]을 단순한 악녀로 규정하여 배후의 서인과 남인의 세력다툼을 아예 생략해 버리고, 조선 중기 궁궐의 암투를 장희빈의 질투로 인해 생긴 갈등으로 규정한다든지, [[인현왕후]]는 마냥 착하게만 묘사했다. 숙종 대와 경종 대의 서인과 남인의 세력다툼도 남인을 간신배 무리로 규정하고 서인은 충신마냥 묘사해놓았다. [[신임옥사]] 사건은 노론이 제 무덤을 판 격인데 이런 묘사는 일절 없이 [[노론|죄 없는 선비들]]이 [[소론|간신배들]]의 모함에 빠져 탄압받은 걸로 나온다. [[사도세자]]와 [[임오화변]]에 관련한 묘사도 당쟁설을 배제하고 [[영조]]가 세자를 학대하고 질책했다는 묘사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세자가 모함으로 죽었다는 노론 음모론의 내용이 나온다. 또 [[화완옹주]]나 [[정순왕후(조선 영조)|정순왕후 김씨]]가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것도 여지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순조]]편은 [[홍경래의 난]]과 [[김삿갓]] 이야기만 나오고, 순조 시대에 일어난 다른 사건은 다루지도 않는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https://m.fmkorea.com/best/2925146161|공짜로 군밤 안 줬다고 군밤장수 죽이려 했던 치사한 놈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때 당시 고종은 12살. 즉, 초딩이다. 왕이지만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애인 데다가, [[세도정치|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시기를 지냈는지 감안해 보자면]] 어린 시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더불어 괄시받았다는 생각으로 서러워 했을 수도 있고 저런 소리는 나올 법 하다. 그런데 대원군이 핍박 받고 궁핍하게 살았다는 얘기도 대부분 소설이나 야사에서 따온 거고, 실제로는 존경받는 왕족으로 그럭저럭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다. 단지 품위 유지하기에는 부족했을 뿐. 이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이런 소리를 한 것 자체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과 군밤장수 이야기는 원래 남가몽이라는 야사가 출처이다.[*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시종원 부경(현재 대통령 비서실 차장의 지위) 정환덕이 1863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록을 직접 쓴 책이다. 계속되는 흉년 속에서 8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 있었음에도 궁중에서 풍악잔치를 벌였던 명성황후, 순종을 폐위시키고 영친왕을 황태자로 옹립시키려다 고종에게 들켜 엄비와 고종이 큰 [[부부 싸움]]을 벌였다는 일화 등이 숨겨져 있다.] 이게 맹꽁이 서당에 그려지면서 읽어본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실제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시대에 유독 밤을 진상품으로 바치는 것에 대한 기록이 잦은 것으로 볼 때, 고종이 실제로 밤을 좋아했을 거라는 추측까지만 가능하다. [[임오군란]] 사건을 다뤘으면서도, 임오군란 이후에 일어나는 조선 말기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동학 농민 혁명|동학 농민 운동]]은 딱 한 컷에 고종 통치기에 일어난 난리 중 하나라고 언급만 하고 '''그냥 넘어갔다.''' 사실 [[윤승운]] 화백과 당시 주류 시각에는 띄워졌으나 후에는 이면이 드러난 인물도 많다. [[남이]]나 [[조광조]]야 그렇다 치더라도, [[송익필]]이 대표적이다. 작품에서는 송익필이 천출 출신이며 훌륭한 군자라 칭하지만, 그의 아버지 송사련은 조광조를 두둔한 안당을 역모죄로 무고한 배은망덕한 인물. 나중에 후손 안처겸이 그 보복으로 동인들이 지원하여 그를 노비로 환원시키자 이에 앙심을 품고 서인의 보호를 받고 기축옥사에서 자신에 원한이 많은 동인들을 엮어서 탄압한 전례가 있던 인물이었다. [[신임사화]]의 노론 4대신은 [[김일경]], [[목호룡]] 같은 간신에게 억울하게 죽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케이스이다. 반면 [[남곤]], [[정순왕후(조선 영조)|정순왕후 김씨]], [[임사홍(조선)|임사홍]] 등은 지나치게 평가절하 되었다. [[고려]]시대편에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는 사실 우리 민족이 [[만주]]로 도망가서 낳은 자식이다'''(아골타)란 내용이 실려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라고 쓰긴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연령층이 책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믿는 어린이 층이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 그러나 금나라의 시조 금(김)함보가 고려(또는 신라) 출신이라는 건 한국 사서가 아니라 중국 측 '금사'에 실제로 기록되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다. 물론 왕가의 뿌리가 불분명한 신생왕조가 주변의 오래된 문명국가의 왕손을 자처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물론 정사를 충실하게 반영한 부분도 적지 않으며, 지금 시각에서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당시 사회상을 묘사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 시절은 여러가지로 국가 기틀을 잡고 하느라 백성들 살기에는 마냥 태평성대는 아니었고 [[성종(조선)|성종]] 시절이 백성 살기 딱 좋은 태평성대였다고 묘사하는데, '''상당히 정확한 묘사다.''' 당시 위인전이나 역사만화 등에서는 [[세종대왕]] 시절 = 딱 [[요순시대]]였다는 식의 서술도 흔했다는 걸 감안하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